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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나는 어느 병원에서 태어났어?

사주팔자 보려는데 태어난 시를 몰라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가 웃기려고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정말로 나는 집에서 태어났다.

밖이 아직 깜깜했고 이른 새벽 즈음 이라 했다. 또 나는 보기드문 우량아이면서 또 되게 많이 아팠다고 했다.

내 입술이 파래지면 엄마는 똥돼지 같은 나를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고 했다. 집이 가난해서 입원 시킬 형편이 안됐다고 했다.

엄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엄청나게 용감하다.

당시 병원 안에는 외판원이 돌아다녔는데 카메라를 현금 할부로 팔길래 엄마는 카메라를 샀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내가 언제 죽을지 몰라서 그랬다고 그랬다. 나는 기적같이 살아 났지만 그래도 엄마는 내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었다. 어린 시절은 평범했다. 여전히 엄마는 내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사춘기가 오면서부터 사진이 점점 줄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2002년 월드컵 때였다. 첫사랑을 시작 했고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술 담배 절도 가출 등등등 험하게 살았다.

그러다보니 우울증이 왔고 스무살이 넘었다

 

심장 수술을 받았다. 아홉시간 걸렸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났을 때 내가 처음 했던 말은 왜인지 포카리스웨트 였다.

이상하다,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책상에 앉아서 난생 처음 공부란걸 해봤다. 적성에 맞았다. 머리가 좋은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 였다.

핸드폰을 버리고 차를 한 대 샀다. 아침 아홉시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독서실에 갔다.

오후 다섯시 반에 밖에 나가서 빵을 하나 사먹고 학원가서 알 수 없는 말을 두시간 듣고 다시 독서실에 가서 새벽 한 시 까지 공부를 했다.

수업 첫 날 선생님이 조금 비웃는거 같이 말하는게 기분이 상해서 더 열심히 했다. 결국 나는 모든 시험에 합격 했다.

한국에서 공부를 끝낸 나는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물론 현실도피가 가장 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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